구원받은 확증
로마서 8:12-1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번 주에도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신앙의 기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원의 확증에 대한 것입니다.
A.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
-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육체를 가진 몸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짐승들도 육체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육체에는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배고픔을 느끼고, 목이 마르며, 졸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육체는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사람도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교제하시며 자신의 뜻을 전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영을 통해 육체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는 천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가 타락하였으며, 그 타락한 천사가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육체적 욕망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존재입니다. 육체의 욕망이 강해지면, 영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가 속도 제한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질주하다가 결국 사고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욕망이 영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결국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도 육체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영이 죽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육체의 욕망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의 영이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설명하며, 에베소서 5:1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영이 죽었다는 것은 곧 영이 깊은 잠에 빠진 상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곧 영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영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선택하신 선지자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시고, 이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 성경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요, 예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알아야만 구약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의 영을 다시 살리며,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B.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려면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성경은 죄의 값이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로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레위기 17:11에서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인간과 동일한 육체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이 대속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 대속의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공평하게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며,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에베소서 2:1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C.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살리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처음 우리의 영을 창조하신 목적과 동일합니다. 즉,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시고, 사람들이 그 뜻을 따라 살면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대속의 은혜로 인해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영이 다시는 죽지 않도록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군인에게 총도 중요하지만, 본부와 연결되는 무전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전기가 없으면 전략을 알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할 수 없으며, 결국 적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무전기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마치 적진에 홀로 떨어진 군인과 같습니다. 무전기의 목적이 본부의 지시를 받는 것이라면,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무시하면, 기도는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우리의 육체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영이 깨어났다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인정하고 가까이 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영으로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대속의 은혜를 믿는 확증이며, 대속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십자가와 칼날)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펜실베이니아의 한 작은 교회 목사였던 데이빗 윌커슨(David Wilkerson)이 뉴욕에서 마약과 폭력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 영화의 주요 내용: 닉키 크루즈(Nicky Cruz)는 갱단에서 난폭한 삶을 살았지만, 데이빗 윌커슨 목사를 통해 회심하고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처음에 닉키 크루즈는 데이빗 윌커슨을 조롱하고 적대적으로 대하지만, 결국 복음과 기도를 통해 변화됩니다. 영화에는 그 변화의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YouTube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으니, 꼭 한 번 시청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로마서 8:12-13)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육(싸르크스, sarx)과 영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육(싸르크스, sarx): 육체의 본성은 누군가가 나에게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Spirit):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영이 있습니다. 이 영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영이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손해를 입히면 쉽게 분노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분노에 대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야고보서 1:20) 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노하고 화를 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의지적으로 화를 내면, 상대방이 변화되기보다 상처를 받을 뿐이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본성을 따르려는 강한 의지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 의지를 굴복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잘했다”는 내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되고,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 육을 다스리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우리는 육체(육)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대속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도록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은혜를 깨닫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확신으로 가득 찬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