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것을 보라
골로새서 3:1-2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환경이나 자신을 바라보면, 일이 잘 풀릴 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쉽게 낙심하고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믿음을 통해 우리는 위를 의미하는 영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로마서 8:32). 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맺어진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이 관계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구할 때,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어 우리를 돕고 보호하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대해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며, 그 모든 과정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우리 각 사람을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9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분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이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통로가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위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육체가 있기 때문에 육에 속한 생각이 마음을 쉽게 지배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을 깨우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영이 깨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영이 깨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영이 깨어났으니,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고,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고 낙심을 소망으로 바꾸어 줍니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도 성령을 통해 얻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를 경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의 삶을 기쁨과 감사로 가득 채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그러므로 환경이나 자신의 부족함에 낙심하지 말고, 위의 것을 바라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모든 환경 속에서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이러한 고백은 환경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위를 바라본 아름다운 예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믿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이사야 41:10) 그리고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의 연약함과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자신을 증거하실 기회임을 일깨워 줍니다.
실례를 들어보면,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그는 원수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를 찬양했습니다. 심지어 블레셋 진영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구원을 간구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시편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간 처지에서도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바울 역시 극심한 곤경 속에서도 위의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바로 그때가 위의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순간입니다.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이러한 시기가 옵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지 말아야 위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4-25)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천국의 원리를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으므로,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며,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가진 자는 더 갖게 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는 옥토와 같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져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결실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세상적인 상식과 이치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게 되면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기회를 잃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 또한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가, 돌밭, 가시밭과 같은 마음에 뿌려진 씨앗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단순히 말씀을 귀로 듣고 지식으로 아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이루시는 역사를 체험함으로써 “아,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구나. 나의 보호자이시구나.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체험적 신앙으로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며 아는 이가 적은 이유 중 하나는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만 해석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활비가 빠듯한데, 자녀를 위해 쓸 돈도 부족한데 어떻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이해하십니다. 하지만 십일조는 우리가 짐처럼 짊어질 부담이 아니라, 안식일처럼 우리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하기 위해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란 우리를 위해 복된 삶이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십일조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그를 맞으며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기원입니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아브라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을 보며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고 증거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고백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됩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영혼 구원의 열매로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중 하나의 예로 십일조를 다루었습니다. 십일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복된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혼 구원의 도구로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십일조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이 없기 때문에 순종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세워 줍니다. 확신이 넘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