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뜨게 하소서

(눅 18:35-4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큰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 힘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등 수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창세기 50:20)

요셉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은 그의 삶 속에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도 삶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 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또한, 시편 91:14-15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내용과 자세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누가복음 18장을 요약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지에 대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나열하였습니다. 세리는 겸손히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영생에 관한 질문에서도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내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물질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따라서, 영생은 우리의 의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한 가난한 맹인 거지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38)

맹인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8:41) 라고 대답했습니다. 눈을 뜨게 되면, 그의 가난한 삶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누가복음 17:10) 라고 겸손히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대부분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마태복음 6:32)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8)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맹인과 세리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 기도입니다.

맹인 바디메오는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비참했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기도해야 했을까요?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38) 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자 왕이심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즉, “나의 왕이신 예수님,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세리도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이와 같이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담은 기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주기도문의 전반부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난주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핵심만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 가능하면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기도할 때는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나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말과 행동이 범사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의 기도이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을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4) 따라서 일용할 양식이란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우리의 당면한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인 영혼 구원의 사역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요셉을 통해 응답된 기도와 같은 원리입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의 비유(마태복음 18:23-35) 를 통해 가르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십니다. 저의 경험으로도, 내가 주님께 용서받은 일만 달란트의 빚에 비하면 나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힌 형제의 죄는 백 데나리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현실에서 용서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우리에게는 그 용서를 실행할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에게 아픔과 피해를 준 형제를 용서하거나 그의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한 증거이며, 성령의 세례를 받은 확증 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여러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할 때 우리의 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죄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24 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기리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24)

또한 야고보서 4:4 에서도 경고하셨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삶을 본보기로 보인다면, 우리 자신도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본받는 자녀들과 교인들 또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본이 되지 못해, 우리의 자녀들과 교인들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형벌 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우리는 이러한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할 때,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을 본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본이 되어, 그들도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다음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기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9) 고 유혹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10)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와 세상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을 뒤로 미룬다면,

이는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음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악에 대하여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6)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원어를 직역하면 “Redeeming the time”, 즉 “세월을 속량하라” 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세월을 값을 주고 사라” 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세월을 속량해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세월을 속량할 수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영혼 구원과 관계없이 살아왔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세월을 허비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신 목적은, 우리가 빛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하며, 영혼을 살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디도서 2:14).

따라서, 세월을 속량한다는 것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육체의 남은 때를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은 세월을 속량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속량해야 할 값입니다. 이렇게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남은 세월 동안 악에 빠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월을 소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의 의미입니다.

끝으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는 기도입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와 사망에 빠진 형제들을 구원함으로써,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육적인 본성을 고집하게 함으로써, 영혼 구원 사역을 실패하게 만들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진심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반드시 주님의 약속대로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여러분은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쉬지 말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영적인 기도를 아버지께 고백함으로써, 원수 마귀 사탄으로부터 속아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