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뜨게 하소서

(눅 18:35-4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큰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 힘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등 수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창세기 50:20)

요셉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은 그의 삶 속에 함께하셨습니다. 우리도 삶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 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또한, 시편 91:14-15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내용과 자세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누가복음 18장을 요약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으시는지에 대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며 나열하였습니다. 세리는 겸손히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영생에 관한 질문에서도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내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물질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따라서, 영생은 우리의 의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한 가난한 맹인 거지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38)

맹인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18:41) 라고 대답했습니다. 눈을 뜨게 되면, 그의 가난한 삶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누가복음 17:10) 라고 겸손히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대부분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마태복음 6:32)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8)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맹인과 세리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 기도입니다.

맹인 바디메오는 재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걸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비참했고,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기도해야 했을까요?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복음 18:38) 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자 왕이심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즉, “나의 왕이신 예수님, 나를 당신의 백성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세리도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8:13) 이와 같이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담은 기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는 주기도문의 전반부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난주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핵심만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은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 가능하면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기도할 때는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나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말과 행동이 범사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의 기도이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을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34) 따라서 일용할 양식이란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우리의 당면한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인 영혼 구원의 사역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요셉을 통해 응답된 기도와 같은 원리입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의 비유(마태복음 18:23-35) 를 통해 가르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십니다. 저의 경험으로도, 내가 주님께 용서받은 일만 달란트의 빚에 비하면 나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입힌 형제의 죄는 백 데나리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현실에서 용서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우리에게는 그 용서를 실행할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에게 아픔과 피해를 준 형제를 용서하거나 그의 죄를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한 증거이며, 성령의 세례를 받은 확증 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여러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할 때 우리의 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한 죄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24 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기리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24)

또한 야고보서 4:4 에서도 경고하셨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삶을 본보기로 보인다면, 우리 자신도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본받는 자녀들과 교인들 또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본이 되지 못해, 우리의 자녀들과 교인들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형벌 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우리는 이러한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할 때, 천국으로 가는 좁은 길을 본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본이 되어, 그들도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다음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는 기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9) 고 유혹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10) 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와 세상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을 뒤로 미룬다면,

이는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음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악에 대하여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6)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원어를 직역하면 “Redeeming the time”, 즉 “세월을 속량하라” 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세월을 값을 주고 사라” 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세월을 속량해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세월을 속량할 수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영혼 구원과 관계없이 살아왔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세월을 허비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신 목적은, 우리가 빛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하며, 영혼을 살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디도서 2:14).

따라서, 세월을 속량한다는 것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육체의 남은 때를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은 세월을 속량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속량해야 할 값입니다. 이렇게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남은 세월 동안 악에 빠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월을 소비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의 의미입니다.

끝으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는 기도입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와 사망에 빠진 형제들을 구원함으로써,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육적인 본성을 고집하게 함으로써, 영혼 구원 사역을 실패하게 만들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진심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반드시 주님의 약속대로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여러분은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쉬지 말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영적인 기도를 아버지께 고백함으로써, 원수 마귀 사탄으로부터 속아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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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8:7–18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존재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히브리서 9장 27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죽음 이후에 무엇이 오는지는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현대 과학이나이성으로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 답을 명확하게 주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으며, 그 심판 앞에서 모든 사람이 설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과연 그 심판대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지금 구원의 확신 안에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두렵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생명으로 이끄는 문을 여는 초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구원의 확신과 새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바로 그 성령님의 임재와 역할, 그리고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경을 통해 함께 깊이 생각해 보려합니다. 이 설교를 통해,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아니라, 구원에 본질적으로 포함된 필수적인 요소이며, 영생의 확신을 가능케 하는 근거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령께서 그 마음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외형적인 종교 활동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마태복음 25장에서 “지혜 없는 다섯 처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들은 등불은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등불은 신앙의 형식이고, 기름은 성령의 임재와 내주를 뜻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 속에 있는 자입니다. 성령은 단지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신앙의 본질입니다. 2. 왜 오늘날 성령 없이 신앙생활 하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을 오해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교회 활동에 참여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땅에서의 형통과 문제 해결, 건강과 성공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가 자리 잡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본질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관계 안에서 구원받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거하시지 않으면, 구원에 대한 확신은 결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죽은 후에 구원을 받기를 막연히기대할 뿐입니다. 그러나 누가 막연한 기대만으로 자신의 일생 전체를 걸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에 더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눈으로볼 수 있는 세상이 더욱 현실적이기에, 믿음의 본질은 점점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요한복음 12장 4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영광, 곧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사모하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더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8장 7절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경고합니다. 육적인 본성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거스르며 대적합니다. 우리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결국 사탄이 주는 거짓된 영에 속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성령이 마음에 거하지 않으면, 설교를 들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눈과 귀는 열려 있어도, 영적인 눈과 귀는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확증하시며,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3. 속죄의 은총을 마음에 깊이 새겨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속죄’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그 깊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속죄의 은총을 올바로 이해할 때에만,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격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해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저주를 친히 대신 감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 속죄는 단지 죄의 용서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완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부모의 사랑은 가장 크고 소중한 사랑이라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크고 완전하며, 비교할 수 없는영원한 사랑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랑의 선언이며, 이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죄의 은혜를 주신 목적은 단지 죄의 사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우리 안에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며,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속죄의 은혜는 믿으면서도, 성령 없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기쁨도 감격도 없고, 세상과 쉽게 타협하며, 종교적인 틀 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성령을 받으면 누리는 은혜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 구원받은 확증

    로마서 8:12-1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번 주에도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신앙의 기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원의 확증에 대한 것입니다. A.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 B.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C.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 체험으로 믿는 하나님 

    마 6:33     하나님은 자신을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고 믿게 됩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자신의 말씀을 실행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실제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죄를…

  • 열린 문의 축복 받기

    요한 계시록 3:7-13 오늘도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메시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왕이 문을 열면 아무도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누구에게 그러한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실까요? 첫째, 작은 능력으로도 충성하는 자에게. 둘째, 인내로 시련을 견디는 자에게. 셋째,…

  • 성서적 가치관

    삼상 7:3-13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세상의 가치관에 익숙하여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성공을 신앙의 모델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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