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되찾아 봅시다.
요한계시록 2: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앞으로 7주 동안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교회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일곱 교회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들에서 우리는 모든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 교회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많은 인내를 했지만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주님은 첫사랑을 버린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베소 교회가 왜 첫사랑을 버렸는지, 첫사랑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에베소 신자들은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악을 분별하여 거짓 사도들을 식별하고 폭로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지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칭찬할 만한 자질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첫사랑을 버린 교회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첫사랑이 없는 열심이나 헌신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3절에 “내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통달하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또 내 몸을 고난에 내어주어 자랑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신앙을 추구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사용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헌신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어떤 어려움도 견뎌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낍니다. 그녀는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어떻게 사라질까요? 그것은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대가를 기대하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그녀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처음의 순수한 사랑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처음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을 때는 무조건적으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책임을 맡고 봉사하기 시작하면 노력에 대한 결과나 보상을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는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 “하나님의 일은 곧 그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3장 20절에서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를 받아들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첫사랑을 버리지 않고 봉사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분이 보내신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이 보내신 사람임을 믿고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함께 모으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교회와 가정이야말로 주님이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요한일서 4:8). 사랑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랑에 뿌리를 둘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사랑이 교회 내의 모든 행동과 계획을 인도해야 합니다. 첫사랑은 우리의 모든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 대신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요한계시록 2:4) 첫사랑을 버리기 쉽습니다. 첫사랑을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구속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처음에 했던 행위로 돌아가라고 부르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우실 것입니다. 첫사랑을 버린 교회는 계속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2. 우리의 첫사랑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구속적인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8절은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으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이러한 구속의 사랑에 비추어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복음 21:15: “너희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면 우리는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응답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을 향한 첫사랑으로 계속 살기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양들을 먹이고 돌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아이가 젖을 먹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낍니다. 그녀는 피로를 잊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보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고 나면 인간의 본성은 율법주의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율법주의란 무엇인가요?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을 따릅니다. 그러나 법은 정죄하고 죽입니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자신의 “올바른” 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첫사랑을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첫사랑을 유지하려면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포도나무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들은 포도나무 안에 머물면서 주님의 사랑과 생명을 받아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본질적인 관계를 망각하고 종교적 의무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첫사랑을 버리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봉사하고 일하는 데는 열정적이지만 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하나님, 주께 가까이, 주께 가까이! 나를 살리는 십자가일지라도 나의 모든 노래는, 나의 하나님, 주께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주께 더 가까이, 주께 더 가까이.
3. 첫사랑을 버렸다면 첫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에 행하던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우리가 어디에서 타락했는지 인식하고 회개하고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첫사랑을 버리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은혜의 관계에서 율법의 관계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시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어머니는 자녀에게 특정한 기대를 품기 시작합니다. 자녀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는 첫사랑을 버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은혜의 관계에서 율법의 관계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첫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자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부모님이 없으면 불안했습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했으니 부모님도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 관계가 법으로 바뀌고 첫사랑은 버려지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었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부모님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아픈 어머니가 제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몸이 많이 약하셨어요. 늘 옆구리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나오면 알코올과 거즈로 닦고 머큐로크롬을 바르는 게 제 일이었죠. 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으셨고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계십니다. 언젠가 저도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첫사랑을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부모님을 사랑할 기회가 없지만, 첫사랑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내 자녀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와 같은 질문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주님의 사랑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불타는 마음, 존 웨슬리의 ‘불타는 마음’을 물려받았습니다. 감리교회는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적인 열망과 매주 열렸던 속회라는 소그룹 모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반장들이 매주 모이는 밴드 모임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임의 초점은 항상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이 모임은 사랑의 모임이었고, 함께 모이면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기쁨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첫사랑을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오려고 할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교회에 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면 그것이 첫사랑입니다. 미움은 누군가를 보고 싶지 않을 때입니다. 더 이상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은 첫사랑을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우리의 원수에게까지 미칩니다. 왜 우리 반 모임이 더 이상 모이지 않나요? 그것은 우리가 첫사랑을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모임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처음에 행한 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기쁨이 될 때 첫사랑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은 우리의 첫사랑이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면 첫사랑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가족 예배를 위해 모이고 싶다면 첫사랑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모이고 싶지 않다면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는 신실하게 모이고 열심히 일하지 않았나요?”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첫사랑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인가요?”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교회에 모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위해 싸우고 인내하며 거짓을 폭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첫사랑을 버린 이유입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된 사람들을 분별하고 폭로하면서 열심히 인내하며 인내했지만, 그 과정에서 영혼 구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려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과 우리를 그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삼으신 방법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 지체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바쁘고 피곤한 한 주를 보내더라도 주님의 구속의 사랑을 믿고 첫사랑을 버리기 싫다면, 매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첫사랑은 너무 커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율법의 렌즈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첫사랑을 버리는 이유입니다. 첫사랑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주님에 대한 사랑도 변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런 사랑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것은 부족해도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 주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의 첫사랑이 넘치게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