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실체인 부활

고린도전서 15:42-44, 히브리서 8:5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단지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명의 약속이요, 영원한 소망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단지 그분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장차 누리게 될 부활의 실체를 보여주는 선취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본질을 가진 것인지,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8장 5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이 세상,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신앙생활조차도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된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육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진정한 실체를 예표하거나 미리 보여주는 상징일 뿐입니다.
진짜는 어디에 있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그 나라, 곧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장막 안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장난감 집을 가지고 놀다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울기도 하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 아이에게는 그 장난감 집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잘 압니다. 그것은 진짜 집이 아닙니다.
그저 진짜 집을 본떠 만든 작은 모형에 불과한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인생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의 삶은 장차 올 영원한 나라의 삶을 준비하는 그림자이며, 실체에 이르는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이 모형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이 세상과 이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집을 짓고, 뿌리를 내리고, 여기에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활주일인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땅의 삶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그림자 너머에 있는 참된 실체, 곧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사모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이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부활은 실체를 드러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부터 44절 말씀은 죽은 자의 부활이 어떤 본질을 가지는지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고린도전서 15:42–44, 개역개정)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삶은 썩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육체의 한계 속에서 욕됨과 연약함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다릅니다. 부활은 썩지 않는 몸, 욕됨이 아닌 영광을 입은 몸, 약함이 아닌 강함을 지닌 몸, 육의 몸이 아닌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실체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묘사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1–4, 개역개정)

지금 이 세상은 눈물도 있고, 아픔도 있고, 죽음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이러한 모든 고통의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곳은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고, 애통도, 슬픔도, 병도, 눈물도 다시는 있지 않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사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입니다. 이것이 실체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그 실체를 비추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그 그림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나라, 영원한 실체를 드러냅니다.

둘째, 부활은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질문 중 하나는,
“부활의 몸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요?”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보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과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입으신 그 영광의 몸,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우리의 부활체의 모형이자 실체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그분은 음식을 드셨고,
또 제자들이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단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몸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몸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지금의 가족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나요?”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서는 결혼 제도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생육하고 번성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계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천사와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존재로서,
서로를 형제자매로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완전한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알아보며,
육신의 혈연을 뛰어넘는 영적 가족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신령한 몸은 썩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영광과 능력의 몸입니다.
죄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입니다.

이사야 65장 25절은 부활 이후의 창조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완전하게 회복될 것을 보여줍니다.
동물들 간의 적대도 사라지고,
상처도, 해로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이후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 우리가 도달하게 될 실체의 나라입니다.

셋째, 기억은 영혼에 기록되며, 부활 후 우리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질문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도 부활 후에 유지될까요?”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을 보면, 방금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조차 금세 잊어버리고 또 반복하십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뇌세포가 손상되고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우는 정보가 반복되면,
시냅스(synapse)라는 신경 세포 간 연결이 강화되어 기억이 형성되고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존재를 단지 뇌의 구조나 세포 활동으로만 정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통전적 존재로 설명합니다.
전도서 12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즉, 우리의 육체는 죽음으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살아 있는 인격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은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에까지 새겨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육과 영, 겉과 속을 모두 꿰뚫는 능력이 있으며,
그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판단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곧, 인간의 존재 깊은 곳에 기록된 정체성과 기억까지 하나님 앞에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다의 죄는 철필과 금강석 끝으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긴 것 같아서…”
또한 히브리서 8장 10절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이 모든 말씀은, 우리의 기억과 정체성이 단지 뇌에 저장된 신경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혼과 마음에까지 새겨진 존재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증거는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형제들을 기억하고 걱정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나사로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6장 9-10절을 보면,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이 장면은, 죽은 후에도 우리의 의식과 기억이 지속되며,
그 기억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 앞에서 살아 있는 증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복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죄와 부끄러움이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17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또한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즉, 구속받은 자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완전히 잊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며,
오직 의와 순종만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상급으로 연결된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
그 날 우리는 ‘기억된 존재’로서 주님의 얼굴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정죄가 아닌, 은혜와 상급의 근거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 말, 생각, 사랑, 순종, 눈물과 기도가
영혼에 기록되어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우리는 단지 살아 있는 육체가 아니라
온전한 인격과 기억을 지닌 존재로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가 기억된 존재로 영광의 부르심에 참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실체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이 세상은 영원한 실체가 아닙니다.
진정한 실체는 오직 부활 이후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또한 빌립보서 3장 20–21절에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그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아멘!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그 실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삶은 다음과 같은 삶의 방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① 회개의 삶을 사십시오
회개는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계속되어야 할 신앙의 태도입니다.
속죄의 은혜를 날마다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 받으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도록 깨끗한 마음과 삶을 지키는 것이 회개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기도하는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② 예배의 삶을 사십시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땅의 예배는 하늘 예배의 모형이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실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은혜를 누립니다.
공동체 예배는 삶의 예배로 이어져야 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모든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의 삶입니다.

③ 사랑의 삶을 사십시오
천국에서의 관계는 오직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참된 사랑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사랑이 나의 성품과 말과 행동 속에서 열매 맺도록 힘쓰는 것이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 결단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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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8:7–18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존재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히브리서 9장 27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죽음 이후에 무엇이 오는지는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현대 과학이나이성으로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 답을 명확하게 주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으며, 그 심판 앞에서 모든 사람이 설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과연 그 심판대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지금 구원의 확신 안에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두렵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생명으로 이끄는 문을 여는 초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구원의 확신과 새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바로 그 성령님의 임재와 역할, 그리고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경을 통해 함께 깊이 생각해 보려합니다. 이 설교를 통해,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9)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아니라, 구원에 본질적으로 포함된 필수적인 요소이며, 영생의 확신을 가능케 하는 근거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령께서 그 마음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외형적인 종교 활동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마태복음 25장에서 “지혜 없는 다섯 처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들은 등불은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등불은 신앙의 형식이고, 기름은 성령의 임재와 내주를 뜻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 속에 있는 자입니다. 성령은 단지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신앙의 본질입니다. 2. 왜 오늘날 성령 없이 신앙생활 하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을 오해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교회 활동에 참여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땅에서의 형통과 문제 해결, 건강과 성공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가 자리 잡고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본질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바른관계 안에서 구원받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거하시지 않으면, 구원에 대한 확신은 결코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죽은 후에 구원을 받기를 막연히기대할 뿐입니다. 그러나 누가 막연한 기대만으로 자신의 일생 전체를 걸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영원의 세계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에 더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눈으로볼 수 있는 세상이 더욱 현실적이기에, 믿음의 본질은 점점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요한복음 12장 4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영광, 곧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사모하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더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8장 7절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경고합니다. 육적인 본성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거스르며 대적합니다. 우리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결국 사탄이 주는 거짓된 영에 속아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성령이 마음에 거하지 않으면, 설교를 들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눈과 귀는 열려 있어도, 영적인 눈과 귀는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확증하시며,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3. 속죄의 은총을 마음에 깊이 새겨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속죄’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그 깊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속죄의 은총을 올바로 이해할 때에만,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격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해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저주를 친히 대신 감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 속죄는 단지 죄의 용서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완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부모의 사랑은 가장 크고 소중한 사랑이라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크고 완전하며, 비교할 수 없는영원한 사랑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랑의 선언이며, 이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죄의 은혜를 주신 목적은 단지 죄의 사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우리 안에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며,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속죄의 은혜는 믿으면서도, 성령 없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기쁨도 감격도 없고, 세상과 쉽게 타협하며, 종교적인 틀 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성령을 받으면 누리는 은혜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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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11 할렐루야! 성탄 주일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황금, 유향, 몰약은 단순히 과거의 예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첫째, 황금, 유향, 몰약이 상징하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황금, 유향, 몰약을 우리의 신앙의 본질인 믿음 사랑 소망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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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8:12-1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번 주에도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신앙의 기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창조, 타락, 그리고 구원의 확증에 대한 것입니다. A.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 B.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C.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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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요한 4:2 할렐루야! 이번 주에도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이므로 간략하게 전할 테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도 요한의 증언을 바탕으로 우리 주님이시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2절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 내 눈을 뜨게 하소서

    (눅 18:35-43)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큰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 힘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체험하게 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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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7:3-13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세상의 가치관에 익숙하여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성공을 신앙의 모델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세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