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가치관

삼상 7:3-13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세상의 가치관에 익숙하여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성공을 신앙의 모델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세상적 가치관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둘째로 성서적 가치관을 따른 삶의 예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서적 가치관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회개와 은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세속적 가치관은 종종 인간의 능력과 외적인 조건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때로는 신앙에서도 외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태도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기기 위한 성공, 부, 학벌을 기준으로 인생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보지 않으십니다.

성서적 가치관은 종종 세속적 가치관으로 인해 도전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이 깊은 가정에서도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다양한 지체 장애를 가진 자녀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왜 그런 자녀가 태어나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질문의 배경에는 인간의 가치를 남을 섬기는 데 두는 성서적 가치관보다,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높아지기 위해 지능이 높고 장애가 없으며 뛰어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세속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의 성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장로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면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메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언약궤는 빼앗기고, 제사장도 전사했습니다.

이들은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제멋대로 가져갔고, 회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을 농락하는 악행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런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언약궤 때문에 승리를 허락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언약궤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두었으나, 다음 날 보니 다곤이 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다시 세웠지만 이튿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고 몸뚱이만 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블레셋 전역에 독종 재앙이 퍼졌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여호와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젖 나는 소 두 마리에 언약궤를 싣고, 송아지를 떼어 집으로 보냈습니다. 만약 소가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가면 재앙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들은 곧장 벧세메스로 가며 울었습니다.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이 재앙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긴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셋 사람들의 손에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직 언약궤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패한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외모인 세례와 직분을 받고 교회에 다녀도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2. 성서적 가치관은 내면의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을 때 형성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외모, 재능, 능력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자신의 중심에는 어떤 가치관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까?

엘리 제사장 가문이 무너지고, 사무엘이 제사장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후 종일 금식하고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때 블레셋이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면 즉시 백성을 모아 전쟁을 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천둥 번개를 치심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정신없이 도망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동일한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엘리 제사장 때는 패패했고, 사무엘 때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이 두려워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엘리 제사장 때는 회개 없이 언약궤만 가지면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세상적 가치관입니다. 결과는 참패했습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를 위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서적 가치관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마음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있습니다. (고후 3:3) 그러므로 우리도 언약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가졌다고 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악을 회개하고 어린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3. 이제 이러한 성서적 가치관을 갖기 위한 회개와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죄악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말씀하기시를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하셨습니다.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니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렇게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으로부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와 악이란 이사야의 말씀에서 보듯이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선을 쌓은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악을 쌓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선한 말을 하지 못하고 율법 아래서 외모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사 64:6)고 했습니다.

내가 옳다는 의는 세속적 가치관으로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왜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셨습니까? 어린 양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이것을 알아야 우리도 사무엘과 같은 번제를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두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속의 원리로, 누군가가 내 대신 내 죄 값을 지고 죽으면 나는 죽음을 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죄를 대신하려면 나와 동일한 인간이어야 하며, 동시에 죄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대속자가 사람이 되어야 했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의 값인 피를 흘리시며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대속의 은혜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며,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나같은 죄인의 죄 값은 사망입니다. 이에 비해 영생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대속의 값을 비유로 말하면 1만 달란트입니다. 내 죄로 인해 주님의 고통받으신 것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이웃과 형제들로 하여금 상처를 받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입힌 형제의 죄 값은 비유적으로 1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이는 1만 달란트와 비교하면 60만 분의 1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셨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내 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없느니라.” (요한일서 4:20) 따라서 죄를 회개하는 것은 내 의를 내려놓는 것이며, 그래야만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의를 내려놓는 중요한 실천 중 하나는 형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바, 사무엘이 사는 동안 평안했더라 (삼상 7:13)라는 축복이 우리의 삶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만큼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더욱 깊이 감사할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만큼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처와 아픔을 세상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돌려,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 아래에서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어린양을 온전한 번제로 드리는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어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와 함께 평강으로 동행하실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공급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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