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실체인 부활
고린도전서 15:42-44, 히브리서 8:5
할렐루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단지 2천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명의 약속이요, 영원한 소망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단지 그분만의 승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장차 누리게 될 부활의 실체를 보여주는 선취된 사건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본질을 가진 것인지,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8장 5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이 세상,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신앙생활조차도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참된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육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 세상의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진정한 실체를 예표하거나 미리 보여주는 상징일 뿐입니다.
진짜는 어디에 있습니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그 나라, 곧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장막 안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장난감 집을 가지고 놀다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울기도 하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 아이에게는 그 장난감 집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잘 압니다. 그것은 진짜 집이 아닙니다.
그저 진짜 집을 본떠 만든 작은 모형에 불과한 것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인생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의 삶은 장차 올 영원한 나라의 삶을 준비하는 그림자이며, 실체에 이르는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이 모형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이 세상과 이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집을 짓고, 뿌리를 내리고, 여기에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활주일인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땅의 삶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그림자 너머에 있는 참된 실체, 곧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사모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이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고, 부활은 실체를 드러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부터 44절 말씀은 죽은 자의 부활이 어떤 본질을 가지는지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고린도전서 15:42–44, 개역개정)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삶은 썩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육체의 한계 속에서 욕됨과 연약함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다릅니다. 부활은 썩지 않는 몸, 욕됨이 아닌 영광을 입은 몸, 약함이 아닌 강함을 지닌 몸, 육의 몸이 아닌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실체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묘사된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1–4, 개역개정)
지금 이 세상은 눈물도 있고, 아픔도 있고, 죽음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이러한 모든 고통의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곳은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고, 애통도, 슬픔도, 병도, 눈물도 다시는 있지 않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사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입니다. 이것이 실체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은 그 실체를 비추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그 그림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나라, 영원한 실체를 드러냅니다.
둘째, 부활은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질문 중 하나는,
“부활의 몸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요?”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보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과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개역개정)
예수님께서 입으신 그 영광의 몸,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장차 입게 될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우리의 부활체의 모형이자 실체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4장을 보면, 그분은 음식을 드셨고,
또 제자들이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단지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몸이면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몸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도 지금의 가족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나요?”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서는 결혼 제도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생육하고 번성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계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천사와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존재로서,
서로를 형제자매로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완전한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알아보며,
육신의 혈연을 뛰어넘는 영적 가족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신령한 몸은 썩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영광과 능력의 몸입니다.
죄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입니다.
이사야 65장 25절은 부활 이후의 창조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완전하게 회복될 것을 보여줍니다.
동물들 간의 적대도 사라지고,
상처도, 해로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이후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 우리가 도달하게 될 실체의 나라입니다.
셋째, 기억은 영혼에 기록되며, 부활 후 우리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질문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도 부활 후에 유지될까요?”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을 보면, 방금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조차 금세 잊어버리고 또 반복하십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뇌세포가 손상되고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배우는 정보가 반복되면,
시냅스(synapse)라는 신경 세포 간 연결이 강화되어 기억이 형성되고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존재를 단지 뇌의 구조나 세포 활동으로만 정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가진 통전적 존재로 설명합니다.
전도서 12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즉, 우리의 육체는 죽음으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살아 있는 인격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은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에까지 새겨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육과 영, 겉과 속을 모두 꿰뚫는 능력이 있으며,
그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판단하신다고 합니다.
이는 곧, 인간의 존재 깊은 곳에 기록된 정체성과 기억까지 하나님 앞에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다의 죄는 철필과 금강석 끝으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긴 것 같아서…”
또한 히브리서 8장 10절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이 모든 말씀은, 우리의 기억과 정체성이 단지 뇌에 저장된 신경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혼과 마음에까지 새겨진 존재의 일부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증거는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형제들을 기억하고 걱정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나사로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6장 9-10절을 보면,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이 장면은, 죽은 후에도 우리의 의식과 기억이 지속되며,
그 기억은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 앞에서 살아 있는 증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복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죄와 부끄러움이 구속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 17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또한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즉, 구속받은 자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완전히 잊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되며,
오직 의와 순종만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상급으로 연결된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
그 날 우리는 ‘기억된 존재’로서 주님의 얼굴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정죄가 아닌, 은혜와 상급의 근거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 말, 생각, 사랑, 순종, 눈물과 기도가
영혼에 기록되어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우리는 단지 살아 있는 육체가 아니라
온전한 인격과 기억을 지닌 존재로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가 기억된 존재로 영광의 부르심에 참여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실체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이 세상은 영원한 실체가 아닙니다.
진정한 실체는 오직 부활 이후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또한 빌립보서 3장 20–21절에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그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아멘!
이제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그 실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삶은 다음과 같은 삶의 방향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① 회개의 삶을 사십시오
회개는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계속되어야 할 신앙의 태도입니다.
속죄의 은혜를 날마다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 받으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도록 깨끗한 마음과 삶을 지키는 것이 회개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기도하는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② 예배의 삶을 사십시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땅의 예배는 하늘 예배의 모형이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실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은혜를 누립니다.
공동체 예배는 삶의 예배로 이어져야 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모든 삶이 곧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의 삶입니다.
③ 사랑의 삶을 사십시오
천국에서의 관계는 오직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참된 사랑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사랑이 나의 성품과 말과 행동 속에서 열매 맺도록 힘쓰는 것이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 결단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