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누가복음 13:6-9

할렐루야! 오늘은 송년주일입니다. 2024년 한 해를 결산하는 주일입니다. 세상은 한해 동안의 업적을 결산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해 결산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후 그에 대한 비유입니다. 무화과 나무와 관련하여 우리 주님의 말씀을 보면, 오늘 읽은 본문 외에 마태복음 21:18-20에 보면,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셨더니,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없음을 보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1:29-31에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공통적으로 종말과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열매에 촛점을 맞추어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도록 은혜를 주시고 인내하시는 분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을 기다렸으나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을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다는 은혜와 인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얻지 못한 주인이 “찍어 버리라”고 한 것은 심판을 뜻하지만,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신 목적은 듣는 이로 하여금 미리 경고해 줌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2024년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간이 다 가고 있습니다. 만일 열매가 없다면 “이 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2024년이라는 기회 속에서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첵업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부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025년도 동일하게 열매와 관계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2026년도 동일하게, 그러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2. 우리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책임과 노력을 다 하시는 분입니다. 과원지기는 주님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와 한 몸을 이루는 그의 신실한 종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원지기는 “1년만 더 참으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1년을 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돌보고 노력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여준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거름이 그동안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거름을 주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열매를 맺는 책임이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한 해동안 얼마나 어떤 노력을 해 왔습니까? 저는 주님께 1년만 더 참으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나이다 하였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열매는 세 가지로 정의됩니다. 첫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율법으로 대합니다. 왜 전쟁과 싸움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복음을 외면하고 율법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옳은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으로 사람을 대하면 자기 목적은 이룰 수 있어도 사람은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와 반대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자기가 옳다는 의를 버리고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고 성서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둘째는 인격의 변화인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선행, 충성, 온유, 절제라는 삶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이 내 마음과 삶을 주관할 때 맺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열매는 자신이 그러한 열매를 맺기 원하여 성령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맺어집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육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자신의 본성은 항상 자신의 삶의 주인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주인은 자신을 비롯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나를 구원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피값을 주고 나를 사신 예수님이 주인입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불행이란 나의 본성이 주인으로 있을 때의 삶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나의 경우, 육의 본성은 내가 옳기 때문에 언제나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내 영이 깨어 기도하기 때문에 육의 본성을 따르면 불행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즉시로 내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도록 크게 숨을 들여마십니다. 이것이 육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막는 나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체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증거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는 전도라는 열매입니다. 모든 열매의 목적은 재생산에 있습니다. 열매 안에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씨를 땅에 심으면 싹이 나고 재 생산을 위해 자라게 됩니다. 포도 나무에서 포도가 열리고, 무화과 나무에서 무화과가 열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을, 영에 속한 사람은 영에 속한 사람을 낳게 됩니다. 전도라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을 영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열매입니다. 2024년 나를 통해 육에 속한 사람이 얼마나 영에 속한 사람 곧 성령을 따르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까? 이렇게 전도의 열매를 주님은 나에게 찾고 있습니다. 

한 해를 결산할 때 세상은 업적을 결산합니다. 어떤 일을 얼마나 성과를 올렸느냐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결산하실 때는 어떤 업적을 보고 결산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성장시켰느냐 그것으로 결산하지 않습니다. 성장은 성장 시키는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업적입니다. 그런데 열매는 다릅니다. 모든 믿는 사람이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열매로 결산하십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블레셋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레셋 군대는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무기와 군사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 곧 예배를 드려야만 합니다. 제사의 권한을 가진 제사장 사무엘이 사울에게 7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7일을 기다려도 사무엘은 오지 않고 병사들은 적의 위세에 겁을 먹고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급한 마음에 자신이 양을 잡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인내했어야 합니다. 사울은 성령의 열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업적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목숨을 잃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업적을 남기는 것이 자기 인생에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업적을 남겼지만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동안 업적에 관심을 가졌는가 아니면 영적인 열매에 관심을 가졌는가 오늘 깊이 고민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동안에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영적인 열매를 맺었느냐가 결산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이제 열매 맺기 위한 결단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2024년에도 변함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와 매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었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가치관의 변화와 성령의 열매와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2025년이라는 시간과 기회를 주셔도 열매와 관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회개는 내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지금이 구원받은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로 가득 맺혀지길 원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성령의 열매 그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내 남은 일생의 전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영적인 열매를 맺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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